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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다 발사장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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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회의 (6월 16일 밤) === 6월 16일 21시 40분, 발사 전 전기 점검 도중 제어계통의 오류 신호로 1단 연료 계통의 파열판[* 추진제 배관을 막고 있다가 전기 신호를 받으면 터지면서 길을 여는 일회용 격막. 한 번 작동하면 되돌릴 수 없다.] 두 개가 조기 작동했다. 연료가 엔진 직전의 주 밸브까지 흘러든 상태가 되면서, 로켓은 절반쯤 발사 절차에 들어간 채로 멈춘 셈이 되었다. 같은 점검에서 발사 순서를 제어하는 주 프로그램 분배기[* 발사 과정의 각 단계 명령을 정해진 순서대로 내보내는 전기기계식 장치. 순서대로 돌아가는 접점이 현재 어느 단계에 있는지에 따라 전원이 들어왔을 때 내보내는 명령이 달라진다.]의 결함도 발견되었다. 23시 네스테렌코는 발사대 옆 가건물에서 현장 회의를 열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추진제를 빼내고 3주 이상 발사를 미루거나, 추진제를 채운 채로 발사대 위에서 결함을 고치는 것이었다. 당시 로켓포병 규정은 추진제가 주입된 로켓에 대한 정비 작업을 금지하고 있었다. 제3설계국과 제9설계국의 일부 기술자들이 추진제 배출을 주장했지만, 네스테렌코는 당대회 일정을 들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테파노프 역시 추진제를 채운 채 수리하는 방안에 동의했으며, 그는 훗날 이 동의를 평생의 짐으로 여겼다고 회고했다. > 그날 밤 가건물 안의 누구도 규정을 몰라서 어긴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규정을 알았고, 규정을 지키면 무엇을 잃는지도 알았다. 그리고 규정을 어기면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는 계산하지 않았다. 나는 원수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반대했다면 달라졌을지는 모르겠지만, 반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 ---- > 예브게니 A. 스테파노프, 유고 회고록 《도면 위의 사람들》(1991)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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